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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일상

에미 뇌터 in 괴팅겐

by 세로북스 2022. 11. 11.

괴팅겐 대학교 교정을 배경으로 '에미 뇌터 그녀의 좌표'를 번쩍 들고

지난 10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가면서 독일의 도시 몇 곳을 여행했다.

그 중에서도 꼭 가 보고 싶었던 도시 괴팅겐, 마침내 갔다.

<에미 뇌터 그녀의 좌표>를 만들면서 늘 상상했던 곳이다.

에미 뇌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고향 에를랑겐에서 올라와 벅찬 마음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을 도시,

목소리 큰 그녀가 동료나 학생 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산책했을 대학의 교정,

점점 옥죄어 오는 나치의 위협을 피해 많은 것을 두고 떠나야 했던 이곳, 괴팅겐.

옛 본관 건물 기둥에는 히틀러 통치 기간 동안 박해를 받고 해고된 학자들을 기리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 독일을 떠나야 했고, 그중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학자들의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 어루만져 보았다.

에미 뇌터, 당신의 책과 함께 왔습니다.

본관 건물 표지판에서 발견한 에미 뇌터(Emmy Noether)의 이름. 대학에서 해고되고 미국 브린마르 대학으로 갔던 에미 뇌터는 53세에 그곳에서 암으로 사망한다. 그녀는 괴팅겐을 몹시 그리워했다.
1. 쾨팅겐 대학 옛 본관 건물 2. 본관의 문 옆 표지판에 붙어 있는 글 3. 괴팅겐 대학 교정
대학 도시인 괴팅겐은 단정하고 아름답다

괴팅겐에서 에미 뇌터는 현대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다비트 힐베르트, 펠릭스 클라인과 함께 연구했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수학적으로 완성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제 노인이 된 클라인은 수학뿐 아니라 물리학에서도 세계의 중심지가 된 괴팅겐의 상황을 즐긴다. 에미는 그곳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이전까지 아무도 올라간 적이 없는 과학의 정상을 오르고 있다. 하지만 행복만 있는 건 아니다. 에미는 괴팅겐에서도 정식 직업을 갖지 못한다. 교육 당국은 여성이 독일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미소 짓는다. 결국엔 그걸 해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_<에미 뇌터 그녀의 좌표> 81쪽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괴팅겐 대학은 전세계 학문의 중심지였다. 19세기에는 가우스, 디리클레, 리만, 다비트 힐베르트 같은 유명한 수학자들이 수학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었고, 20세기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막스 보른, 제임스 프랑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막스 폰 라우에 같은 물리학자들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언어학자로, 동생 빌헬름 그림과 함께 <그림형제동화집(원 제목은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을 펴낸 야코프 그림(Jacob Grimm) 역시 19세기에 괴팅겐대학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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